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은 건설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인사다.
그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신공법으로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공사비용을 절감하는 등 항상 건설업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또 말레이시아의 98층짜리 쌍둥이 건물인 KLCC빌딩의 초기 공사 책임자를 지내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국내 최초로 건설사업관리(CM) 회사를 세웠다.
CM은 건설사업의 기획, 설계 단계부터 발주 시공 및 유지·관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주의 대리인 및 조정자의 역할을 맡아 통합 관리해 적기에 예산 범위내 고품질의 시설물을 사업주에게 인도하는 서비스다.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사업이지만 국내는 한미파슨스가 지난 96년 처음 시작했다.
한미파슨스는 지난 2003년부터 천국 같은 회사, 최고의 일터를 구현하기 위해 행복한 일터 만들기 운동을 시작했다. 직원들의 교육 지원은 기본이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자녀 수에 상관없이 학비를 지원하고 안식휴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직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32개의 의사소통 채널을 마련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구현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따뜻한 동행’이라는 사회복지법인을 사회복지단체와 설립했고 지난해 출간한 책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의 인세를 모두 기부하고 있다. 김 회장은 “탁월한 기업문화가 자리잡은 회사는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며 “구성원이 주인인 천국 같은 회사, 최고의 일터는 확고한 꿈이자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한샘건축연구소서 첫 발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공부는 잘했지만 모범생은 아니었다. 주먹을 좀 쓰는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고등학교 때는 역도부를 했다. 김 회장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공부도 공부지만 깡이라는 것을 배웠다”며 “깡이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기업을 할 때 중요한 덕목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 깡이다”며 “중·고등학교 때의 생활이 결과적으로 기업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김 회장은 졸업 후 조창걸, 김영철씨가 운영하는 한샘건축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당시 조 선배는 설계사무소와 부엌가구 공장을 함께 경영하면서 주택사업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며 “부자들 호화주택이나 설계해주며 돈벌이에 급급해하는 건축가들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며 건축가의 사회적 사명을 강조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4년간 한샘에서 근무하며 김 회장은 건축일 외에도 자재 구매와 무역업무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면서 점점 건축과 단절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결국 당시 해외 플랜트 수출의 선두주자인 현대양행으로 회사를 옮긴 후 2년 뒤 다시 한양으로 이직했다.
■말레이시아 쌍둥이빌딩 현장소장
한양에 입사한 후 김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으로 나갔다. 거기서 그는 CM에 눈을 떴다. 김 회장은 “우리 건설사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사를 하는데 선진국 건설업체들은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찾은 답은 CM이었다. 영국 유수 대학에 입학지원까지 했고 재정적인 문제로 유학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공부해보겠다는 의지는 있었다. 대신 국내에 들어와 공대생으로는 이례적으로 1980년대 중반 서강대 경영학석사(MBA)에서 공부했다.
한양이 어려워지면서 김 회장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7년 처음으로 현장소장으로 발령받은 곳은 서울대 호암생활관이었다. 그는 “5층짜리 숙소 건물 2개 동과 2층짜리 회관을 짓는 작은 공사였지만 호암이라는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식됐다”고 말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한 김 회장은 성공적으로 호암생활관을 마무리지었다. 그 후 순화빌딩 공사, 동양증권 사옥 공사를 맡았다. 특히 동양증권 사옥 현장소장을 할 때는 경쟁 건설사들이 3∼4년 걸려 하는 공사를 20개월 만에 마무리지으면서 업계의 스타로 우뚝 섰다. 결국 능력을 인정받은 김 회장은 말레이시아 KLCC빌딩의 현장소장으로 파견된다.
■세계 10대 CM회사로 도약
김 회장이 CM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은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현장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당시 삼성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외국인 감리 전문가 60여명을 뽑아 삼성건설,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건설현장에 특별 감리를 실시했다. 그 책임자로 김 회장이 선발됐다.
김 회장은 프로젝트가 끝난 후 앞으로 CM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판단해 1996년 한미건설기술주식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순번을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자는 의지는 충만했다. 1999년 외국계 투자은행, 부동산 개발회사 등의 국내 투자가 늘면서 기회는 찾아왔다. 1999년 까르푸 서울 가양점 CM을 시작으로 부산신항만개발사업,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 공사 등을 수주했다.
그 후 한미파슨스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CM 등을 맡으면서 초고층 건설 CM에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한미파슨스는 국내외 700여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해외도 적극 진출해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9곳의 해외법인을 설치했으며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미국 및 남아메리카 등 36개국에 진출했다. 김 회장은 “2015년 세계 10대 CM회사로 도약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창업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항상 고민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회는 누구한테나 오는데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평소에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평소의 꿈을 설계하고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pride@fnnews.com이병철기자
■김종훈 회장 약력 △63세 △경남 거창 △서울사대부고 졸업(1968)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73)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MBA) 졸업(2001) △한샘건축연구소(1973) △삼성물산(1984) △한미파슨스 대표이사 사장(1996) △한미파슨스 대표이사 회장(현) △국토해양부장관 정책자문위원(현) △건설교통기술평가원 기술평가위원 △한국건설관리학회 고문(현) △대한건축학회 초고층건축물 건설기술개발 연구단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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